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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02 12:30:13
  • 수정 2017-11-02 12: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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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와 창하오가 식사자리에서 복기를 하면서 서로를 교감하고 있다.

17일 경남 합천군 문화예술회관에서 벌어진 한중영재&정상 바둑대결에서 한국의 이창호와 신진서는 나란히 중국의 랴오위안허와 창하오에게 석패하며 하루 일정을 마쳤다. 물론 이벤트대국이긴 하지만 이창호와 신진서라는 과거권력과 미래권력이 동시에 패했다는 것에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6시 쯤 일행은 대국장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故) 하찬석 국수님 조카가 운영하는 흑돼지전문점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했다. 여기에는 합천군바둑협회 회원들과 샤오웨이강 창하오 랴오위안허 등 중국선수단 그리고 신진서 신민준 김성룡 등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프로들과 기자단 등도 함께 했다.

여기서 본의 아니게 기자는 횡재를 했다. 이창호가 잠시 후 기자의 앞좌석에 앉는 것이 아닌가. '우하하하!'

이창호는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좀 있는 편이다. 지금은 더러 술도 한잔하고 대중 앞에서 말도 잘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낯선 사람은 약간 어려워하는 편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지라 기자는 이창호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처음엔 소주를 권했고, 다음 맥주를 권했고, 다음 콜라를 권했더니, 그냥 물을 마신단다. 더 이상 권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창호는 아내의 둘째 딸 출산이 다음 달이라고 했고, 첫 아이보다 둘째 아이는 예정일보다 일찍 나오기도 한다는 기자의 말도 새겨들었다. 또한 삽겹살에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먹어 치운다. 그 즈음, 저기서 맥주 한잔을 들고서 중국 창하오가 이창호의 곁으로 와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창호와 건배를 하고 싶다는 뜻일 게다. 기자가 아무리 권해도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더니 창하오가 권하자 이창호는 언제 그랬냐는 투로 대뜸 같이 한잔을 들이킨다.

이창호와 창하오의 우정어린 건배.

그 광경을 놓칠 세라 급한 맘에 스마트폰으로 꺼내 들었다. 그런데 한잔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창하오가 여성통역을 부르더니 이창호에게 아까 랴오위안허와 둔 바둑을 복기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통역이 바둑용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전달이 잘 안된다고 느낀 기자는 얼른 찍던 스마트폰으로 기보를 보여주었다. 바둑판이 하나 생기자 남자통역까지 또 합류하며 두 사람은 10분간이나 대화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연륜이 묻어나는 불혹에 접어든 두 사람은 전성시절인 십 수 년 전부터 한중 양국의 진정한 일인자로서 양국 팬들에게서 호감이 대단했다. 기력뿐 아니라 대범한 기질이나 서로의 서로를 향한 존경심,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성까지 심지어 이름까지 닮은꼴이었다. 그야말로 거장의 풍모를 오늘 이 자리에서 실감나게 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흑이 이렇게 두었으면 백은 어떻게 하려고 했나요?"(창하오)
"그것이 확신이 안 들어서 그랬는데, 창하오 선생은 누가 좋은 것 같나요?" (이창호)
"여기서는 수읽기가 어려운데, 어떤 수를 생각하고 계셨나요?"(창하오)
"여기서는 확실한 수읽기를 못했습니다. 나중이 어려워서요. 당신은 지금 형세가 어떤 것 같아요?"(이창호)
"오늘 바둑은 이창호 선생의 과거의(안정적인) 기풍이 사라진 느낌입니다."(창하오)
"…"(이창호)

▲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기보를 찾아주자 본격적인 두 거장간의 복기가 이뤄지고 있다.

대인의 대화였다. 주변 관계자들도 숙연하게 듣고 있었다. 아직도 창하오는 이창호를 존경하고 있었고 이창호도 그런 창하오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바둑 한판에 대해 그들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과거엔 이창호가 답을 내려주는 대화였다면 지금은 같이 고민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그들의 대화엔 오직 이창호와 창하오의 오랜 우정이 있을 뿐이었다.

1997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근 20년간 지속되었다. 15년 세월이라면 '인연'이라는 표현을 써야하지만, 인연이 아니라 악연에 가까웠다. 바로 그때부터 2000년이 될 때까지 창하오는 무려 12연패의 치욕을 당했다. 지금까지 세계정상에서 노니는 일류들 가운데 특정인에게 12연패를 할 상호관계가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까지 상호전적 39전 28승11패로 이창호가 앞서있다.

메이저 세계대회 17회 우승에 빛나는 이창호가 창하오(39)보다 한살 위. 하늘이 이창호를 낳고 또 창하오 낳는 바람에 창하오는 천하를 가질 수가 없었다. 창하오는 이창호가 세월의 뒷 물결을 이겨내지 못할 즈음인 2005년 응씨배(대 최철한)에서 우승한 것이 처음이며, 2007년 드디어 이창호를 상대로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그를 극복한다.

2012년을 끝으로 그들의 만남은 끊어졌다. 얼마나 이창호가 그리워했으면 어제 전야제에서 창하오는 '처음엔 이창호와 대국을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을까(실제로는 농이었다). 최소한 창하오는 이창호에 대해서는 아직도 진심만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이창호와의 만남을 고대했으면 이창호와의 10번기 얘길 했을까. '이창호에게는 언제나 배우게 된다'는 그는 이창호와의 10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이 말은 농반진반인 듯).

오늘 만찬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접한 한중 거장(巨匠)의 복기는 칠월칠석에 만난 견우직녀처럼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 기자는 운좋게 두 거장의 복기를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 행운을 누렸다.


[덧붙이는 글]
타이젬에서 2015년1월17일자 '워러의 일기'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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