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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23:42
  • 수정 2017-10-30 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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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5년 10월 2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50년간 노동현장 누빈 숙련공 '황반장' 푸른항해(61)님. 지금은 충남공주에서 현장일을 하고 있다.

"(서울)양재동도 좋고 화순도 좋고 전주도 좋고…. 어디 계십니까? 어디든 댕겨 올랍니다! ㅋㅋ."
"집은 전주, 고향은 화순. 지금은 방이동. 너무 바빠요. 1주일 후면 시간이 됩니다."
"요즘 (서울)방이동입니까? 전주입니까? 어디 계세요?"
"충남 공주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어요. 공달과 함께 팔팔 끓는 순댓국에 쇠주 곁들일 날 지둘려 봅니다~!"

기자가 그와 처음 타이젬 쪽지로 주고받았던 것은 지난 3월쯤이었다. 그는 과거 '19로공감' 코너에서 글을 올리기도 했던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던 ID였다.

그는 쪽지를 보낼 때마다 '공달선생~'으로 시작하는 멘트에서 인간미가 넘쳤고, 더욱이 순대국에 소주를 곁들이자는 유혹에 견딜 재간이 없었던 터. 기자는 틈틈이 그의 소재지를 찾느라 6개월여를 보냈다. 그를 꼭 보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공달선생'은 무언가. 기자를 지칭하는 것 같긴 한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호가 워러고 자는 월허라며? 월허면 빌 공자에 달월자 해서 공달이제! 이런 무식허기는!" '아닌데… 그러면 공월인데…쩝!'

▲ 그가 일하는 현장인 충남 공주의 한 강줄기 모습.

충남 공주 모처에서 그라우팅(grouting) 작업 중인 그를 만났다. 그라우팅 공법이란 농업용 산업용 물을 확보하기 위해 강물이나 호수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땅속으로 일종의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 '푸른항해'님은 '황반장'으로 통하는 그라우팅 전문숙련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기자를 보자마자 찐한 포옹을 하는 '황반장'의 품에 안긴 기자의 가슴이 얼얼하다. 포옹 후 반갑다고 등이라도 몇 차례 두드렸다면 아마 숨이 팍팍 막혔을 것이다. 그는 환갑에도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몸을 자랑했다.

그의 본가는 전남 화순이며 현재 전주에 기거하고 있다. 그리고 하는 일이 현장 노동일이기 때문에 이곳저곳 때로는 해외까지도 일감을 찾아 유랑생활을 할 때가 많다. "13살부터 노가다를 했어요. 이곳 공주에서 일한 지는 한 달쯤 되었고 이번 추석 언저리에 끝낼 계획입니다."

현장노동자들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또 힘든 육체노동 탓에 여유시간이 생겨도 바둑을 고상하게 즐기는 분은 드물 것이다. 황반장에게는 그라우팅이 전문이기 때문에 일종의 기술직. 따라서그에게 일을 부탁하는 연락이 자주 온다고 한다. 그만큼 일 할 줄 아는 인력이 드문 현실이어서, 그는 기능직 대우를 받는다.


▲ 여기서 강줄기를 막아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라우팅(grouting) 작업을 해야 한다. 사진은 땅속에 구멍을 뚫은 작업.

▲ 이어서 콘크리트를 그 구멍으로 흘려 넣는 작업이 이어진다.

도대체 바둑과는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현장노동자가 바둑은 언제부터 흥미를 보였을까. 그것도 시골에서 바둑을 배울 계기는 드물었을 것인데.

"현재 타이젬 2단이니 기원에 가면 한 5~6급 되나요? 처음엔 독학을 했죠. 소설책은 봐도 바둑책은 그림과 글과 같이 읽어야 하니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TV가 유선방송이 되면서 바둑방송이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서 '초보탈출' 같은 프로를 하는데 막 빠져들었죠. 아니, 뭐 저녁에 일 끝나고 들어와서 누워있으면 할 일이 없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12급 정도였는데, 그러다가 타이젬을 알게 되면서 장족의 발전을 했죠."

건설노동자인데 왜 '푸른항해'로 ID를 만들었을까. 그는 전국구다. 매번 지방을 돌아다니니까 바둑기자와 흡사하다. 'ID대로라면 배를 타야 하잖아요?'라고 하자, 그의 유머감각이 또 빛을 발한다. "아니, 운전도 못하는 데 수영은 더욱 못하지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군에 간 아들이 해양고출신이어서 지은 ID라고. 사실은 그 아들이 타이젬으로 인도한 귀인이었단다. "내가 바둑을 두니까 아들놈이 한번은 인터넷을 뒤져서 타이젬을 소개해주더군요. 그것 다운을 받아서 설치해달라고 했죠. 아, 글쎄 이렇게 휘황찬란한 별천지 세상이 있나 싶더라고요. 완전히 꽂혔어요. 하하."

▲ 푸른항해님은 휴식시간마다 타이젬 바둑을 들여다보는 것이 낙이란다.

타이젬이 뭐가 그리 좋을까. "글 쓰는 사람이나 채팅하는 사람이나 상스런 말을 하면서도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았죠. 내일 또 싸우고 화해하고 내일 또 싸우고… 대화창만 쳐다보고 있으면 요즘 아기들 말로 므흣하죠.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많아서 좋지. 내가 먼저 곱게 인사하면 다들 좋게 받아줘. 이렇게 행복이지 뭐 별거 있어요?"

바둑방송을 열심히 보면서 6급까지 올랐다. 그때부터 현장노동일을 마친 후 숙소에서는 날밤을 새는 일이 잦았다. 새벽 6시 해가 동터오면 그길로 곧장 일터로 나가곤 했다. "1단 올라가고 나서 2단, 3단도 막 갔어요. 일류프로들 바둑구경 하는 게 효과가 있었던지 바둑이 엄청 즐거운 거예요. 이창호는 바둑신이라면 이세돌은 바둑귀신이더라고요. 하하"

평생 현장노동자로 일한 분치고는 굉장히 곱상하다는 느낌이다. 그는 늘 밝게 살아가려고 한단다. "현장 노동하는 분들은 찌그러든 인상이 좀 많아요. 수입이 적고 일이 일정하지 않고 하니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도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거든요. 나 같은 경우는 시골에서 조그맣게 사는데 그리 많은 돈도 필요 없어요. 알뜰살뜰 살면 살 수 있다고 봐요. 하루 이틀 이 일을 하면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일이 천직으로 생각합니다."

▲ 푸른항해님과 회사 사장님(오른쪽)의 건배. 사장님은 푸른항해님을 '형님'이라고 깍듯이 부른다. 과거 건설소장시절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고.

바둑을 몰라서 대화가 별로 재미가 없다던 건설사 사장님도 끼어든다. "형님이 지방에 가서도 한푼 두푼 아껴야 할 건데, 방은 꼭 자기 돈이 추가되더라도 컴퓨터가 있는 방을 잡아달라는 것이에요.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요. 바둑두려고. "

"(푸른항해님께) 왜 그러나요?"
"공달 보고 싶어서…하하."

사장님은 푸른항해님을 '형님'이라고 깍듯이 부른다. 과거 건설회사 소장으로 나가있을 때 그와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일솜씨에 반해 계속 인연을 쌓고 있는 사이라고. 사장님 말씀이 이어진다.

"외국인들 다루는 것을 보고 놀랐죠. 흔히 동남아 친구들을 무시하곤 하는데 형님은 어르고 달래고 하는 거예요. 동남아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리더십도 있구나 생각했죠. 보통 말도 안통하고 게으름피우면 열부터 뻗치는데, 형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 참노동의 고마움을 느끼고 산다는 푸른항해님.

현장노동자 푸른항해님은 13살 때부터 직업인이었다.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50년을 이어왔다. 어릴 때는 돈을 버니까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그는 그 일을 천직으로 삼고 산다. 비록 시골이지만 땅도 사고 자식농사도 잘 짓고 부러울 게 없다고 했다. 맘의 여유를 가지고 작은 행복도 큰 행복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강조한다. 선배로서 노동일을 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할 것이 없어서 이 일은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이거 벌어서 뭣해?'하고는 도박도 하고 경마장에 가는 분들도 더러 있어요. 사실은 건강하게 놀데가 없어서 그런 점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바둑을 배우라고 하고 싶어요. 화를 다스리고 또 바둑 속에서 얻는 지혜를 생활에 잘 활용해서 살면 그것처럼 좋은 게 없잖아요."

누구나 주연이 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어 하고 늘 앞줄에 서고 싶어 하는 세태에서, 작은 것 하나에 만족하고 즐겁게 사는 귀한 분을 만났다. 여태 수많은 인터뷰를 해보았지만 이렇게 진실 되고 자기 일에 열심이면서 자기 분수에 맞춰 살면서 만족을 누리는 사람을 만난 적은 드물었다. 그는 뛰어난 조연이었다.

끝으로 타이젬은 그에게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역시 그다운 명쾌한 답변이 돌아온다.

"타이젬은 돈이제! 남들 돈 쓸 때 나는 돈을 안 쓰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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