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간 노동현장 누빈 숙련공 '황반장' 푸른항해(61)님. 지금은 충남공주에서 현장일을 하고 있다.
"(서울)양재동도 좋고 화순도 좋고 전주도 좋고…. 어디 계십니까? 어디든 댕겨 올랍니다! ㅋㅋ."
"집은 전주, 고향은 화순. 지금은 방이동. 너무 바빠요. 1주일 후면 시간이 됩니다."
"요즘 (서울)방이동입니까? 전주입니까? 어디 계세요?"
"충남 공주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있어요. 공달과 함께 팔팔 끓는 순댓국에 쇠주 곁들일 날 지둘려 봅니다~!"
기자가 그와 처음 타이젬 쪽지로 주고받았던 것은 지난 3월쯤이었다. 그는 과거 '19로공감' 코너에서 글을 올리기도 했던 적이 있어서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던 ID였다.
그는 쪽지를 보낼 때마다 '공달선생~'으로 시작하는 멘트에서 인간미가 넘쳤고, 더욱이 순대국에 소주를 곁들이자는 유혹에 견딜 재간이 없었던 터. 기자는 틈틈이 그의 소재지를 찾느라 6개월여를 보냈다. 그를 꼭 보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공달선생'은 무언가. 기자를 지칭하는 것 같긴 한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호가 워러고 자는 월허라며? 월허면 빌 공자에 달월자 해서 공달이제! 이런 무식허기는!" '아닌데… 그러면 공월인데…쩝!'
▲ 그가 일하는 현장인 충남 공주의 한 강줄기 모습.
충남 공주 모처에서 그라우팅(grouting) 작업 중인 그를 만났다. 그라우팅 공법이란 농업용 산업용 물을 확보하기 위해 강물이나 호수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땅속으로 일종의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 '푸른항해'님은 '황반장'으로 통하는 그라우팅 전문숙련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기자를 보자마자 찐한 포옹을 하는 '황반장'의 품에 안긴 기자의 가슴이 얼얼하다. 포옹 후 반갑다고 등이라도 몇 차례 두드렸다면 아마 숨이 팍팍 막혔을 것이다. 그는 환갑에도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몸을 자랑했다.
그의 본가는 전남 화순이며 현재 전주에 기거하고 있다. 그리고 하는 일이 현장 노동일이기 때문에 이곳저곳 때로는 해외까지도 일감을 찾아 유랑생활을 할 때가 많다. "13살부터 노가다를 했어요. 이곳 공주에서 일한 지는 한 달쯤 되었고 이번 추석 언저리에 끝낼 계획입니다."
현장노동자들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또 힘든 육체노동 탓에 여유시간이 생겨도 바둑을 고상하게 즐기는 분은 드물 것이다. 황반장에게는 그라우팅이 전문이기 때문에 일종의 기술직. 따라서그에게 일을 부탁하는 연락이 자주 온다고 한다. 그만큼 일 할 줄 아는 인력이 드문 현실이어서, 그는 기능직 대우를 받는다.
▲ 여기서 강줄기를 막아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라우팅(grouting) 작업을 해야 한다. 사진은 땅속에 구멍을 뚫은 작업.
▲ 이어서 콘크리트를 그 구멍으로 흘려 넣는 작업이 이어진다.
도대체 바둑과는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현장노동자가 바둑은 언제부터 흥미를 보였을까. 그것도 시골에서 바둑을 배울 계기는 드물었을 것인데.
"현재 타이젬 2단이니 기원에 가면 한 5~6급 되나요? 처음엔 독학을 했죠. 소설책은 봐도 바둑책은 그림과 글과 같이 읽어야 하니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TV가 유선방송이 되면서 바둑방송이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서 '초보탈출' 같은 프로를 하는데 막 빠져들었죠. 아니, 뭐 저녁에 일 끝나고 들어와서 누워있으면 할 일이 없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12급 정도였는데, 그러다가 타이젬을 알게 되면서 장족의 발전을 했죠."
건설노동자인데 왜 '푸른항해'로 ID를 만들었을까. 그는 전국구다. 매번 지방을 돌아다니니까 바둑기자와 흡사하다. 'ID대로라면 배를 타야 하잖아요?'라고 하자, 그의 유머감각이 또 빛을 발한다. "아니, 운전도 못하는 데 수영은 더욱 못하지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군에 간 아들이 해양고출신이어서 지은 ID라고. 사실은 그 아들이 타이젬으로 인도한 귀인이었단다. "내가 바둑을 두니까 아들놈이 한번은 인터넷을 뒤져서 타이젬을 소개해주더군요. 그것 다운을 받아서 설치해달라고 했죠. 아, 글쎄 이렇게 휘황찬란한 별천지 세상이 있나 싶더라고요. 완전히 꽂혔어요. 하하."
▲ 푸른항해님은 휴식시간마다 타이젬 바둑을 들여다보는 것이 낙이란다.
타이젬이 뭐가 그리 좋을까. "글 쓰는 사람이나 채팅하는 사람이나 상스런 말을 하면서도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았죠. 내일 또 싸우고 화해하고 내일 또 싸우고… 대화창만 쳐다보고 있으면 요즘 아기들 말로 므흣하죠.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많아서 좋지. 내가 먼저 곱게 인사하면 다들 좋게 받아줘. 이렇게 행복이지 뭐 별거 있어요?"
바둑방송을 열심히 보면서 6급까지 올랐다. 그때부터 현장노동일을 마친 후 숙소에서는 날밤을 새는 일이 잦았다. 새벽 6시 해가 동터오면 그길로 곧장 일터로 나가곤 했다. "1단 올라가고 나서 2단, 3단도 막 갔어요. 일류프로들 바둑구경 하는 게 효과가 있었던지 바둑이 엄청 즐거운 거예요. 이창호는 바둑신이라면 이세돌은 바둑귀신이더라고요. 하하"
평생 현장노동자로 일한 분치고는 굉장히 곱상하다는 느낌이다. 그는 늘 밝게 살아가려고 한단다. "현장 노동하는 분들은 찌그러든 인상이 좀 많아요. 수입이 적고 일이 일정하지 않고 하니까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도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거든요. 나 같은 경우는 시골에서 조그맣게 사는데 그리 많은 돈도 필요 없어요. 알뜰살뜰 살면 살 수 있다고 봐요. 하루 이틀 이 일을 하면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일이 천직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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