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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17:30
  • 수정 2017-10-30 1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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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5년 9월 29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중국 칭다오에서 9년 동안 신발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타이젬 마니아 실버스타론(55).

중국은 한국의 경제파트너로서 긴밀한 협조가 이어지는 국가요, 바둑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성장의 파트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동력이 아니라면 세계바둑계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

맥주로 유명한 도시 칭다오(靑島). 중국 산둥반도 남부에 위치한 칭다오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어서 중국무대로 진출한 기업들이 많다. 따라서 통역이나 관리업무를 위해 조선족도 덩달아 넘쳐나니, 칭다오 시내는 한국어 간판을 단 음식점이 즐비하다.

항공기가 뜨나 싶었더니 서울-제주 코스 정도 날았을까, 기내식도 가벼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동시에 줄 정도로 비행시간은 짧았다. 막상 혼자서 이국에 떨어지자 약간 긴장이 되었다. 중국어는 전혀 안되고 가벼운 영어도 통용되지 않는 중국이고 보면. 전화번호와 ID 정도만 알고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제가 실버스타론입니다!"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저 쪽 옆에서 한분이 튀어나오면서 악수를 건넨다. 친절하게도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왔다. 우리 타이제미는 신상명세를 말하지 않아도 딱 보면 티가 나는 모양이다.

▲ 그는 신발디자인을 전공한 신발도사.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

칭다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5만 명 정도며, 미등록 인구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칭다오와 한국으로 오가는 사업가나 출장지로 삼는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그 중 타이젬 마니아 실베스타스론(55)이 사는 곳은 청양구로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미국으로 치면 LA같은 곳. 이곳 칭다오에서 신발공장을 9년째 경영하고 있다.

그는 부산에서 학교를 나왔고, 울산에서 3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찮게 신발디자인을 배우게 되었다. 현재 사업의 모토가 된 신발디자인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데. 일을 배우면서 익히는 과정이라 애초엔 월급도 없는 일종의 기능공 수준이었다. 운 좋게도 그 방면의 일류 사부를 만나 디자인을 확실히 마스터했고 신발유통까지 업무를 확장했다. 그 유명한 ABC마트 개발실 중역으로 일하다 지금의 신발공장을 경영하게 되었단다.

신발공장은 한물 간 사업이 아닐까? 신발공장이 많았던 어릴 적을 떠올리니 사양산업이 아닐까 하고 좀 걱정스러웠다. 그는 이곳 칭다오에서는 반제품을 생산하여 한국의 완제품 회사에 납품을 한다. 따라서 최근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와 큰 상관이 없다며 기자를 안심시킨다.

"흔히 중국에서 사업한다면 큰돈이라도 만지는 것 같이 여기지만 사실은 타국에서 착근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크고 작은 손실도 많이 입었지만 결국 9년간 이어왔으니 성공은 아니라고 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지요. 하하."

▲ 칭다오에서 그의 공장이 있는 이수현은 2시간 남짓 떨어져있다. 가는 길에 칭다오의 명물인 풍력발전기 날개가 돌아가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칭다오에서 2시간 남짓 거리의 린이시 이수현이라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안내했다. 그는 7년 동안 공장부근에서 생활하다, 최근 2년 동안 이곳 칭다오의 숙소에서 기거했다. 왕복 4시간을 달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그가 타이젬과 막역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도 들려주었다.

그가 바둑에 눈을 뜬 것은 10년 전 인터넷바둑을 접하면서부터. 당시엔 여러 사이트를 닥치는 대로 이용했는데, 한번은 대화창에서 '역시 바둑은 타이젬이야!' 라는 얘길 듣고서 곧장 타이젬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 타이젬에서 하루 예닐곱 판은 예사로 두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다.

"이곳 타이젬에 오니 완전 신세계였어요. 프로고수가 많다는 것이 제일 즐겁죠. 일류프로들이 제 앞에서 무료로 어성기를 두고 있잖아요. 하하. (어성기(御城碁)=일본 막부시대에 쇼군 입회하에 일본 4대문파의 대표가 펼치는 바둑승부) 또 전반적으로 기력이 세니까 저 같은 하수들에게는 바둑공부에 도움이 되죠. 나쁜 것은 별로 찾을 수가 없는데… 일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시간패를 당하는 것 정도?"

처음 타이젬에 들어와서는 5급 계급장을 달았다. 그러다 이기는 횟수가 늘어났고 급기야 2년전부터 단에 오르게 되었고 지금은 3~4단을 오간다. 그는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순전히 실전에서 부딪히면서 두어서 늘게 된 타입이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인생과 흡사하게 실전을 통해서 바둑도 사업도 같이 성장했다.

▲ 그에게 타이젬은 적적함을 달래주는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 이상의 친구였다.

바둑알을 처음 잡은 것은 20세 이후였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친구도 없었으니 심심풀이로 바둑을 두어야만(?) 했다. 마침 동생이 보던 바둑책을 몇 권 가져와서 보곤 했다. 그런데 책은 전혀 재미가 없었단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없는 바둑을 왜 두는 것이냐'며 동생을 나무라곤 했다.

그런 그가 바둑마니아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의 영향이었다. 지금 동생은 타이젬 8~9단을 왔다 갔다 하는 고수란다.

"어릴 때부터 저녁때 마다 복덕방이나 이발소 등 남정네들이 모이는 곳에서 바둑에 빠져있던 동생을 데리고 왔죠, 그러면서 저도 서서히 바둑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집안에 바둑 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집안에 바둑머리가 좀 있었나 봐요. 형님도 바둑을 두는데 역시 동생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는 이곳 칭다오에서 '타이젬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단다. "이곳 칭다오에는 제가 절친한 친구가 3명이 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장기를 잘 두어서 장기사이트로 타이젬 가르쳐줬고, 올해 환갑을 넘긴 형님뻘도 타이젬을 소개해주어서 지금 한참 타이젬에 빠져있어요. 하하." 이들 친구는 타지생활의 외로움 괴로움을 타이젬으로 녹여내고 있다고.

▲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착한 사장님 실버스타론(가운데). 시골 부엌에서 현지인들과 찬으로 맛있게 식사한다.


실버스타론은 공장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하나뿐인 초등운동회에 동네유지로서 참석도 하는 등 이곳 사람들과 철저히 동화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마침 기자가 방문했을 때가 점심시간이었는데, 공장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어서 몹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곳은 구멍가게도 찾기 쉽지 않은 '깡촌'. 그때 사장인 실버스타론은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며 기자의 등을 툭툭 치면서 부엌에서 자그마한 의자에 기대어 노동자와 함께 즐겁게 식사를 했다.

"이게 바로 바둑의 힘이요 교훈입니다. 내가 뭔가를 달성하려면 눈에 보이는 이득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십결(圍碁十訣)의 한 구절 있잖아요! "

실버스타론은 9년간 이국땅에서 철저하게 버티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했다고 자부한다. 거의 중국어는 통달을 했고 직원들의 눈빛만 봐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훤하다. '깐깐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간혹 비치는 그의 완고함마저도 이곳에 적응이 잘 된 증거이리라.

▲ 공장에는 이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

'
실버스타론'은 무슨 뜻일까. 무슨 대부업체명인가.

"하하. 실버는 은이고 스타는 별, 론은 경제학개론 할 때 론(論)입니다. 즉, '은빛론'입니다. 1등만 기억하지 말고 2등도 기억하자는 뜻이죠."

그랬다. 실버스타론은 그가 10년 가까이 살아온 중국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압축하는 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은메달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저마다 다양한 세계와 능력을 인정하고 저마다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으리라.

"남들은 사장이라고, 중국서 사업하다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이곳은 여전히 전쟁터입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시간 호젓하게 타이젬 바둑을 즐기는 것이 나의 무한한 행복이자 생활입니다."

실버스타론(55)은 이번 추석을 쇠러 귀국한다고 했다. 아마 이 글을 한국에서 보게 된다면 반가운 추석선물이 될 것이고, 칭다오에서 읽게 된다면 그 또한 기분 좋은 택배가 되리라. 아무튼 정겨운 추석이 되었길 바라마지않는다.

▲ 이곳은 척박한 땅이어서 땅콩재배가 잘 된다고 한다. 사람이 걸어 다닐 정도의 폭만 남겨둔 채 온통 땅콩을 말리고 있다.

▲ 땅콩 밭에서 수확한 땅콩을 털고 있는 할아버지. 기자가 "나, 한궈!" 하자 알아듣고는 포즈를 멋지게 취해주었다.

▲ 공장 내부에도 틈만 있으면 땅콩을 말리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이 말리던 땅콩을 담아서 기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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