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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16:15
  • 수정 2017-10-30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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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5년 9월 14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산(山)사나이 삼(蔘)사나이 김명한 씨. 그는 타이젬 7단의 바둑마니아.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으로 한참 달리다 급하게 차를 세웠다. 평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지론이지만 이번에는 영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오른쪽 산길은 차량이 다니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맞습니다. 그쪽으로 올라오시면 포크레인이 한 대 보이고 거기서 더 올라오면 비포장 길이 나옵니다. 그 길로 쭉…"

길이 맞긴 맞다한다. 그런데 인기척이 하나 없는 그 산길로 무려 1km나 더 올라가야 하다니 어쩐지 좀 으스스한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저 위에서 다른 차가 내려오면 어떻게 하나?' 옆으로 당겨놓을 공간이 전혀 없는 산길이어서 초행자로서는 조금 위험한 산길주행이었다.

한참 올라가도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 다시 한 번 전화를 넣었다. '아뿔싸!' 이젠 휴대폰도 먹통이다. 핸드폰마저 터지지 않는 곳까지 올라와서 살짝 당황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저 쪽에서 '80년대 유물'로 보이는 고물 트럭 한 대가 굴러온다. 그렇게 인기척이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잘 찾아오셨네요. 김명한입니다."

자연의 품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연과 동화하며 욕심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자연인이라 한다. 자연인은 겉보기로는 더없이 낭만적이지만 실제생활은 일거수일투족이 투박하고 불편할 터.

그는 차를 내 오면서 요양차 산속생활을 하러 온 이웃 한 분이 금세 이곳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얘길 꺼낸다. "3년 정도 살 거라고 큰 소리를 치더니 몇 달 못 버티고 내려가려고 하네요. 산속 생활이 보기보다는 어렵죠."


▲ 좁은 길을 따라 1km나 올라가야 그의 숲속 보금자리가 나온다(위). 집 앞마당에서 김명한 씨가 포즈를 취했다(중간). 냉장고 옆면에는 부인이 적어 두고 간 음식만들기 매뉴얼이 붙어있다.(아래)

충청도 금산에 사는 산사나이 바둑마니아 김명한 씨는 바둑동네에서는 '장뇌삼'으로 통한다. 그는 하늘의 뜻과 땅의 기운과 사람의 정성이 하나로 뭉친 금산인삼을 오랜 동안 재배해온 농사꾼이다.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된 충북 청원이 고향인 김씨가 여기 금산을 1995년에 들어왔으니 올해 딱 20년째. 현재는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등을 재배한다고.

"젊었을 때부터 산 속에 들어갈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산에서 뭘 하고 살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죠. 학교 다니면서도, 외국생활을 하면서도 나이 40세는 넘기지 말고 산을 들어가자 작정했어요. 얘들 어렸을 때도 서울 신림동에서 구리시까지 주말마다 농사지으러 다니곤 했어요. 39세에 결국 산을 택했죠. 의외로 식구들은 담담하게 응해주었고요."

그는 이곳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약초재배를 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집안을 두리번거리자 냉장고 옆에 뭔가 잔뜩 메모지가 붙어있다. 자세히 보아하니 부인이 이곳을 방문할 때 각종 요리방법을 적어주고 간 메모지다. '자취생활 20년'에 그는 혼자서 다 해결하며 살 것 같았지만, 여전히 요리엔 자신이 없다며 껄껄 웃는다.

이곳은 여느 산골동네처럼 고요한 것은 아니란다. 약초를 구입하러 오시는 손님들과 바로 바둑인들의 방문도 잦기 때문. 누가 그렇게 많이 다녀갈까 했더니, 여성연맹 대학동문 등 바둑친구들이 바둑여행 힐링여행을 자주 온단다. 심지어 태국 완타니 여사도 몇 번 씩 자고 갔을 정도로 유명한 명소가 바로 이곳.

완타니기 누굴까. 완타니는 요즘 세계바둑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태국바둑협회의 부회장이며 올해 세계아마대회를 태국으로 유치한 공로자다. 태국대회는 세계아마대회 사상 한중일이 아닌 타 국가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바로 그 유명한 '세븐일레븐'의 태국사장인 코삭과 함께 태국바둑계를 이끌고 있는 양 축이다.


▲ 지난 겨울 태국 치앙라이에서 벌어진 동아시아바둑대회를 마치고 기념촬영. 맨 오른 쪽이 김명한 씨. 그 왼쪽은 태국바둑협회 완타니 부회장, 조혜연 프로, 김향희 대학바둑연맹 부회장, 맨 왼쪽은 김진훈 프로.

해외까지 바둑친구의 연을 맺은 이유가 있었다. 그는 초중고는 대전에서 다녔지만 대학은 한국외대 태국어과를 다녔다. 한국외대하면 바둑인들에게는 박윤서 유종수 김원태 김세현 등 쟁쟁한 바둑고수의 이름이 오버랩될 정도로 유명했던 전통이 있는 학교. 그 중 1980년대 독일유학 중 크고 작은 유럽대회를 석권했던 유종수와 태국어과 동기동창이다.

그는 젊은 시절 대부분을 태국 베트남 중동 등지에서 사업을 했다. 역마랄까, 도전정신이랄까. 졸업식을 마치고 곧장 날아간 곳이 바로 태국. 태국에서 인력관리 회사였는데 당시 그는 해외건설현장에서 한국어 태국어가 가능한 고급인력이었다. 대졸초임이 25만원이었지만 친구들보다는 4배를 더 받았다.

중동 인도 베트남 태국에서 2년간 일을 하고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사업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동에 식품 공급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한번 배를 띄우고는 폭망해버렸다. 태국회사의 실수로 유효일자를 잘못 찍는 바람에 전량 폐기처분을 당한 것. 이를 테면, 제조연월일을 2015년이라고 찍어야 하는데 2005년으로 찍은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한 동안 벌었던 것을 다 까먹고 오히려 큰 빚까지 지게 된 것.

와신상담, 그는 부인을 서울 금호동 허름한 셋집에 남겨두고 다시 태국으로 갔다. 그의 인생에서 태국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무일푼으로 건너가 대사관 통역, 기업임직원들의 가이드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베트남이 1989년 처음 개방을 할 적에 베트남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그는 그 와중에서도 바둑의 끈을 놓치 않았다. 1986, 1987년 태국 교민바둑대회 2연패.


▲ 국수산맥배 국제대항전에서도 김명한 씨(왼쪽에서 두번째)는 모습을 드러냈다. 베트남 태국 선수들과 함께.

그러다 다시 바둑계와 인연을 다시 맺은 것은 참으로 극적이었다. 다시 귀국하여 약초농사에 전념할 적에 서울 경동시장 주변 거래처를 방문했다. 그런데 한번은 거래처 사장이 자신의 친구도 바둑인이라는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그의 질긴 바둑인연이 되살아났다. 바로 그 바둑인은 바둑행사전문업체 클럽A7 홍시범 대표. 홀대표의 말이다.

"제 친구의 거래처 분이니까 저와도 친구가 되었죠. 그 분이 태국어가 유창하니까 십수 년 전 아시아바둑선수권대회에 통역을 맡기게 되었어요. 그 뒤로 각종 세계아마대회 때마다 태국 베트남 등지의 바둑인들에게 한국으로 통하는 중요한 루트가 되었죠."

그 뒤로 각종 큰 행사가 있을 땐 상품이나 기념품으로 그가 애써 가꾼 고급 장뇌삼을 내 놓기도 했다. "제가 가진 것은 그것 밖에 없으니 바둑행사에 도움이 될까 해서 내놓은 것이죠. 이수성 전 총리나 완타니 여사, 김인 국수님 등에게 몇 뿌리 드렸습니다."

그가 장뇌삼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가운데 필리핀 이멜다도 있다. 이멜다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며 사치와 부패의 상징. "지인에게 장뇌삼에 대해서 들어서 그 효능을 알았나 봐요. 그래서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선물로 장뇌삼을 주었는데, 이후 품질이 좋다며 전화가 와서 약간 거래를 했죠."


▲ 한때 필리핀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오른쪽)와 장뇌삼 거래도 있었던 김명한 씨(왼쪽)

산(山)사나이 삼(蔘)사나이 김명한 씨의 하루는 새벽 2~3시 농사준비로부터 시작된다. 4시 경 산꼭대기부터 내려오면서 작업을 하고, 4시30분 정도면 날이 밝아서 여름엔 오전 9시쯤이면 일을 일단 마친다. 오후엔 각종 기계정비와 기반시설을 돌보고, 또 겨울에는 땔감 솎아베기를 한다. 산속에서 유유자적할 것 같지만 굉장히 일이 많단다.

그러한 그에게도 바둑이란 유일한 벗이며 생활의 일부다. 그는 산 속 깊숙이 살면서도 늘 바둑방송을 켜놓고 틈만 나면 타이젬 대국을 실전하는 바둑마니아다. 그의 말로는 생활의 활력소가 바둑이라고 했는데, 생존의 음식이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는 지금도 바둑공부를 해서 더 늘고 싶고, 바둑대회도 나가고 싶다. 이쯤 되면 바둑마니아를 너머 바둑환자 수준이다.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바둑이 나온다. 9살 때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선친이 바둑알 공장에 투자를 한 까닭에 바둑알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또 당시 집에서는 세를 놓았는데, 고시 공부하던 한 분에게 바둑을 배웠다, "중3 여름 방학 때도 입시공부하러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기력이 7~8급 정도였고 대학갈 때는 4급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꾸준히 늘고 있는 게 신기합니다. 타이젬 7단입니다."

택배 보내고 받는 것이 일이란다. 25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부치고 받고 한다. 택배기사가 이곳까지 올라올 수가 없어서 그렇단다. 또 화물차가 고장이 나면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는데, "렉카가 여기까지 올라오질 못하니 산 아래까지 제가 고장차를 내려가야 해요. 고장차라도 기어를 1단으로 하고 내려가면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배웠죠. 하하"

산속에서 해는 짧다. 취재를 마친 기자를 배웅하러 나가면서 또 그는 포크레인에 올라탄다. 수시로 땅을 더 넓혀야 하기 때문이라고. 비가 오면 힘들게 가꾼 땅이 또 유실되니 계속해서 개간을 해야 하고 땅을 다져야 한다. 원래 길이 없는 곳이었으니 새롭게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서울로 올라온 후 그를 아는 한 지인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완벽하게 순수한 분이죠!"


▲ 헛개나무 가시오가피를 심은 저 너머 산을 가리킨다.


▲ 오래된 트럭과 적적함을 달래주는 강아지와 함께.


▲ 좌측에 놓인 솥은 바둑친구 수십명분의 밥을 지은 흔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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