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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1-18 21: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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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5년 4월 7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산속나그네님이 오대산에서 직접 채취한 상황버섯을 들고 포즈.

ID를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사는 지역 또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이세돌을 연상시키는 '이삼돌', 유명 축구선수를 연상케 하는 '호나호도', 아니면 지역을 상징하는 '부산갈매기'같은 ID를 대하면, 동일지역이거나 동일취미를 가진 유저들은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산속나그네'라는 ID로 대화창을 누비며 여러 유저들과 상냥하게 인사를 나누는 분이 있다. 산과 관계가 있는 분이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으리라.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런 식의 평범한 인사보다는 '언제 한번 소주 한잔 하죠'라는 인사가 더 어울리는 대화창 단골 고객이다. 깊고 깊은 산에서 신비의 약초를 캐는 장현용(59) 씨는 이렇게 늘 약초냄새를 풍기는 분이었다.

'산삼 상황버섯 가시오가피 겨우살이 칡즙 호박즙 정성껏 달여드립니다.'
산속나그네는 청주에서 '예기(禮起)건강원'을 경영하고 있다. 저 멀리서부터 한약 달이는 건강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건강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평 남짓한 방 가득 겨우살이로 가득 찼고, 더덕 상황버섯 심지어 산삼도 보이고 수많은 이름 모를 귀한 약초가 즐비했다. 한쪽에는 그 귀한 약초로 담근 술도 즐비했다. "아, 향기롭습니다!"

그의 명함을 받아드니 '산사람 산속나그네'라고 적힌 수식어가 들어온다. '산사람'은 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렇다고 쳐도, 타이젬 ID '산속나그네'가 그대로 명함에 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산속나그네는 있는 그대로 산사나이는 되지 못하고 산에서 얼쩡얼쩡하는 나그네란 뜻이죠. 하하"

예기(禮起)라, 그리 어려운 한자가 아니어서 기자가 의미를 생각하려고 해도 무슨 뜻인지 탁 와닿지 않는다. "주역을 하는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인의예지 할 때 예(禮)는 참을 인(忍)의 의미가 있다고 해요. 모든 것을 참고 살라는 뜻입니다."

▲ 약초를 달인 물을 한잔 따르는 산속나그네. 뒤편에 걸린 사진들이 그의 산 생활을 보여준다. 천장에 달린 것은 벌집.

사업의 일환이기보다는 맘을 정화하고 수양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만약 생활의 방편이었다면 심마니들이 캐온 약초를 구입해서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직접 귀한 약초를 캐기 위해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스스로 심마니가 되어 깊은 산속을 헤매곤 한단다. 강원도 오대산을 비롯해 설악산 소백산 등 그가 안 가는 데는 없다. 기준이 있다면 깊고 깊은 곳을 청정지역을 선호한다는 것. "산만 생각하다보니 대인관계가 좀 약하고 세상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오대산으로 들어가야지요. 저만 아는 깊고 깊은 곳을 찾아갑니다."

약초를 캐다보니 보편적으로 피부가 좋고 오장육부가 다 좋고 근육도 탄탄해진단다. 약초를 복용하는 사람보다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한 이치일까. 산속나그네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군살도 전혀 없으며 성품도 깐깐한 분이었다. 그가 언제부터 어떻게 산속나그네가 되었을까. 산이 있으면 골도 있는 법. 그가 살아온 인생도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청주. 1976년 서울 종로5가에 있는 모 한의원에 취직해서 허드렛일부터 배웠으니 소싯적부터 한약계통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1979년 젊은 나이에 녹용사업을 하다가 때마침 불어 닥친 '한약계의 몰락'을 피하지 못하고 종자돈을 모두 털어먹었다. 다시 한의원에 취직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국내최대 약령시장인 서울경동시장에서 약초사업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8년 반이나 오래 끌었지만, 또 다시 능력부족을 곱씹으며 실패의 쓴잔을 들이켰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당시 신도시였던 경기도 안산에서 건강원을 다시 열게 된다. 지금과는 달리 약초와 동물 등 종합적인 건강원이었다. 그간의 실패의 보약 탓인지 한 달이면 1주일 밤을 샐 만큼 일이 밀려들었다. 친구도 따랐고 돈도 따랐다. 그러나 또 큰 사기를 당해 또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 그때 나이 48세.

적지 않은 나이에 닥친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삭일 길이 없었던 그는 급기야 산을 찾게 된다. 사실 젊어서부터 약초관련 사업을 했기에 가끔씩 입산하던 버릇이 있었다. 48세에 이르러 본격적인 '심마니' 산속나그네가 되었다. 그는 팔자라고 했다.

▲ 건조된 겨우살이와 건조 중인 겨우살이.

심마니조차 힘들어하는 직업이 약초 캐기다. 산에 들어가기만 하면 약초가 있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약초는 범인의 눈에 흔히 뜨인다면 약초가 아니라 잡초일 뿐. 결국 삼천리 방방곡곡 심산유곡을 돌아다녀야 한다. 간혹 산삼이라도 캐야 돈이 되고 이런저런 초재(草材)나 캐서는 먹고살기 빠듯하다. 혹시 산삼 같은 귀한 것을 캐본 적은 있을까.

"오대산에서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크기의 산삼을 업자들에게 넘긴 적이 4번 정도 있었어요. 입산할 때 25kg 배낭을 지고 산비탈을 5~6시간 정도 올라서 1주일에서 보름 정도 움막에 기거합니다. 내려올때는 40kg이 됩니다. 새벽3시까지 밤을 새고 움막으로 돌아왔더니 덜컥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일반인들은 약초 중 산삼이 최고인줄 알지만, 사실 깊은 산속에서 정기를 받은 상황버섯은 산삼 못지않은 보물이란다. 자연산 야생 상황버섯이 지구상의 그 어떤 물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항암효과가 탁월하다.

"오래 묵고 큰 것일수록 항암균사가 엄청나게 압축되어 주로 oo전선 향로봉 쪽에서 채취합니다. 삼은 100만원, 상황은 1000만원이라는 말이 있어요" 뽕나무에서 난 것은 진짜 뽕나무 상황버섯이고, 가문비상황 분비상황 개회상황 등 일반인은 일일이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천차만별이란다.

보통 심마니는 2인1조지만 산속나그네님은 혼자서 채취한다. 또 보통 건강원은 심마니에게 받아서 장사를 편하게 하지만 그는 직접 따오는 게 품질 면에서 매우 우수하다고 믿는다. "솔직히 다른 사람보다 귀한 약초가 많이 보여요. 민통선 지역이나 군사작전 지역이라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 많습니다. 그래도 저만의 비법이 있습니다. 가끔 oo사단 체포조에게 잡혀서 허탕 친 날도 있어요."

그도 전문 심마니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일류 심마니. 그래서 그도 늘 경건한 맘을 갖고 산다. 길일을 택하여 산에 들어가고, 수일 전부터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며, 목욕재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웅혼한 산에 대한 경건함이다. "움막에서 고등어를 알불에 구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런 일탈을 한 날은 영락없이 산은 베풀어주지 않아요."

▲ 3년전 그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산삼을 캔 적이 있다.

▲ 각종 상황버섯 등 산삼만큼 귀한 약초가 즐비하다

▲ 이웃 아주머니들에게 약초 산나물 등을 나눠준다고.

그는 고향 청주인근에 유기농농사도 짓는다. 영리목적이 아니라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요즘엔 산에 들어가면 저만 아는 곳에다 씨를 뿌려놔요. 나만 약초를 채취한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오랜 세월 지나면 내가 뿌린 씨앗 덕분에 '심봤다!'하고 외칠 수 있잖아요. 산은 베푸는 걸 가르쳐 주었지요. 가끔 산나물 나눠먹는 타젬 유저들도 꽤 있어요. 하하."

타이젬 식구가 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22세에 처음 바둑을 접했다. 앞서 많은 실패를 거듭할 적에 술을 가까이 했고, 그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기원에서 바둑을 배웠다. 거기서 2년 정도 바둑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재주가 있었던지 기원5급 기력에 도달했다. 그 뒤 사업을 하면서 기원을 찾을 시간이 없어졌고, 때마침 타이젬의 존재를 알아서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다. 틈틈이 바둑을 두어서 타이젬 6단까지 오른 적도 있다고 자랑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무래도 타이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즐겁지요. 지는 걸 싫어해서 바둑공부를 했죠. 가끔 산에 갔다가 오랜만에 바둑을 두면 아이템을 써서 급수를 내려서 다시 올라오곤 하죠."

아무리 좋은 의술이라도 돈이 결부되면 절대 병이 낫지 않고, 진심으로 좋은 약재로 정성을 다해야 병이 낫는다. 젊은 시절 당한 수많은 실패 속에서 그는 앎을 깨달았고 삶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착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맘으로 산다고 했다.

"즐기면서 일을 하죠. 산더덕을 캐면 술을 담고 송이버섯을 따면 술 안주합니다.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즐깁니다."

오늘 바로 그 친구로 기자가 낙점되었다. 덕분에 가시오가피주 산머루주 마가목주 돌배주 산더덕주…. 그 외 이름도 처음 듣는 천연약초로 담근 보약술을 모두 맛을 보았다. 서울서 멀지 않은 청주였지만 기자는 당일 귀가하지 못했다.

▲ 산속나그네가 가장 즐거운 시간은 역시 타이젬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 건강원 한쪽 벽에는 손수 채취한 귀한 약초로 술을 담가두었다.

▲ 친구가 찾아왔으니 담근 술을 개봉하겠단다. 가시오가피주 산머루주 마가목주 돌배주 산더덕주 등 십여가지 술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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