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속나그네님이 오대산에서 직접 채취한 상황버섯을 들고 포즈.
ID를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사는 지역 또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이세돌을 연상시키는 '이삼돌', 유명 축구선수를 연상케 하는 '호나호도', 아니면 지역을 상징하는 '부산갈매기'같은 ID를 대하면, 동일지역이거나 동일취미를 가진 유저들은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산속나그네'라는 ID로 대화창을 누비며 여러 유저들과 상냥하게 인사를 나누는 분이 있다. 산과 관계가 있는 분이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으리라.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런 식의 평범한 인사보다는 '언제 한번 소주 한잔 하죠'라는 인사가 더 어울리는 대화창 단골 고객이다. 깊고 깊은 산에서 신비의 약초를 캐는 장현용(59) 씨는 이렇게 늘 약초냄새를 풍기는 분이었다.
'산삼 상황버섯 가시오가피 겨우살이 칡즙 호박즙 정성껏 달여드립니다.'
산속나그네는 청주에서 '예기(禮起)건강원'을 경영하고 있다. 저 멀리서부터 한약 달이는 건강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건강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평 남짓한 방 가득 겨우살이로 가득 찼고, 더덕 상황버섯 심지어 산삼도 보이고 수많은 이름 모를 귀한 약초가 즐비했다. 한쪽에는 그 귀한 약초로 담근 술도 즐비했다. "아, 향기롭습니다!"
그의 명함을 받아드니 '산사람 산속나그네'라고 적힌 수식어가 들어온다. '산사람'은 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렇다고 쳐도, 타이젬 ID '산속나그네'가 그대로 명함에 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산속나그네는 있는 그대로 산사나이는 되지 못하고 산에서 얼쩡얼쩡하는 나그네란 뜻이죠. 하하"
예기(禮起)라, 그리 어려운 한자가 아니어서 기자가 의미를 생각하려고 해도 무슨 뜻인지 탁 와닿지 않는다. "주역을 하는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인의예지 할 때 예(禮)는 참을 인(忍)의 의미가 있다고 해요. 모든 것을 참고 살라는 뜻입니다."
▲ 약초를 달인 물을 한잔 따르는 산속나그네. 뒤편에 걸린 사진들이 그의 산 생활을 보여준다. 천장에 달린 것은 벌집.
사업의 일환이기보다는 맘을 정화하고 수양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만약 생활의 방편이었다면 심마니들이 캐온 약초를 구입해서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는 직접 귀한 약초를 캐기 위해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스스로 심마니가 되어 깊은 산속을 헤매곤 한단다. 강원도 오대산을 비롯해 설악산 소백산 등 그가 안 가는 데는 없다. 기준이 있다면 깊고 깊은 곳을 청정지역을 선호한다는 것. "산만 생각하다보니 대인관계가 좀 약하고 세상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오대산으로 들어가야지요. 저만 아는 깊고 깊은 곳을 찾아갑니다."
약초를 캐다보니 보편적으로 피부가 좋고 오장육부가 다 좋고 근육도 탄탄해진단다. 약초를 복용하는 사람보다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한 이치일까. 산속나그네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군살도 전혀 없으며 성품도 깐깐한 분이었다. 그가 언제부터 어떻게 산속나그네가 되었을까. 산이 있으면 골도 있는 법. 그가 살아온 인생도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청주. 1976년 서울 종로5가에 있는 모 한의원에 취직해서 허드렛일부터 배웠으니 소싯적부터 한약계통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1979년 젊은 나이에 녹용사업을 하다가 때마침 불어 닥친 '한약계의 몰락'을 피하지 못하고 종자돈을 모두 털어먹었다. 다시 한의원에 취직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국내최대 약령시장인 서울경동시장에서 약초사업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8년 반이나 오래 끌었지만, 또 다시 능력부족을 곱씹으며 실패의 쓴잔을 들이켰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당시 신도시였던 경기도 안산에서 건강원을 다시 열게 된다. 지금과는 달리 약초와 동물 등 종합적인 건강원이었다. 그간의 실패의 보약 탓인지 한 달이면 1주일 밤을 샐 만큼 일이 밀려들었다. 친구도 따랐고 돈도 따랐다. 그러나 또 큰 사기를 당해 또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 그때 나이 48세.
적지 않은 나이에 닥친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삭일 길이 없었던 그는 급기야 산을 찾게 된다. 사실 젊어서부터 약초관련 사업을 했기에 가끔씩 입산하던 버릇이 있었다. 48세에 이르러 본격적인 '심마니' 산속나그네가 되었다. 그는 팔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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