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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30 10:08:52
  • 수정 2017-10-30 11: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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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타이젬 '나는 유저다'에서 2015년 3월 8일에 쓰여진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백마사랑동호회를 십수년째 이끌고 있는 백마부대출신 쓸쓸한강변님.

부산역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 4층에 허름한 기원이 하나 나온다. 벽지색깔도 많이 바랬고 조명은 어두침침해서 그리 썩 쾌적한 시설은 아니었다. 첫 방문이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털털하게 보이는 연세 지긋한 한 분이 명함을 건넨다. "타이젬에서 오셨습니까? 저 원장입니다."

백마기원 원장 김상철(67). 그리고 이름 바로 아래 '타이젬9단'이라고 선명히 박고 '쓸쓸한강변'이라고 씌어있었다. 이 곳 백마기원을 운영하면서 타이젬에서는 백마사랑동호회의 시삽으로 활동 중인 분이었다. 외모는 노년의 세월을 가릴 만큼 당차 보였다.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원로배우 신성일 필이 조금 나는 듯했다. "젊을 때는 그런 얘기도 가끔 들었습니다. 하하."

기원영업을 하면서 동호회활동을 시작했으리라. "아닙니다. 기원을 같이 하자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중도에 그만두어 제가 어쩔 수없이 인수했습니다." 기원문을 연 지는 2년밖에 안되었고, 동호회는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활동하던 모임이란다. 기원에서는 바둑도 두고 마작도 하고 카드놀이도 한다. 그는 "노름하는 것도 아닌데 어때요?"라고 반문한다. 부산사내 특유의 무뚝뚝함 투박함 화끈함이 묻어나온다.

그는 차를 한잔 타오더니 백마사랑동호회 걱정부터 쏟아낸다. "제가 2002년도에 백마를 만들었고 제가 사범이고 시삽이죠.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2년 전 제가 이 기원을 하면서부터 시간이 나지 않아 백마가 약간 방치된 느낌이 있어요. 동호회를 맡아서 모임을 이끌어갈 분 좀 소개해 주세요."


▲ 지금도 틈만나면 백마에 접속하지만 전처럼 강의나 지도대국은 조금 소홀하단다.

동호회원들이 많은데 무슨 그런 걱정을 하세요. 동호회에서 가끔씩 오프모임 또는 정모를 할 때면 기원이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왜 병행을 못한다는 것이죠?
백마는 타이젬이 생기기 이전부터 모임의 형태는 있었으니 역사가 꽤 깊습니다. 단순하게 회원간 친목도모에 열중한다면 충분히 기원을 할 수는 있지만, 원래 지도대국하고 바둑강의도 하고 제 손을 타는 분들이 제법 많아요. 어쩌면 제가 아니었으면 바둑의 재미에 빠지지 않았을 분들이죠. 한참 활동할 때는 하루 5시간 정도가 소요되었어요. 너무 이 모임이 아까워서 다른 좋은 분이 맡아주신다면 제가 부시삽이라든지 평회원으로서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67세라면 적지 않은 연세인데, 인터넷동호회 활동을 하게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53세가 되던 해 처음 인터넷바둑을 알게 되었어요. 가끔씩 지도를 바라는 유저들이 있었고, 시간이 나면 가끔 두어주고 강의를 하다 보니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호응이 대단했죠. 그래서 사업을 하는 와중에 주로 야간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게 십년을 넘어간 것이죠. 백마는 야행성입니다. 밤 10시 쯤 들어가서 새벽3시까지 화상캠 강의를 하죠. 하수님들께 대국 해드리고. 하수님들은 고수와 한수를 둬보는 것이 최고 아닙니까. 9점이든 두 점이든 하루 5~10판 정도를 두었죠. 창 3개까지 띄워놓은 적도 있어요.

일일이 지도해주다보니 회원들의 충성도랄까 굉장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타이젬에 접속하여 방을 만들면 한 7~80명은 족히 모일 것입니다. 제가 언제 접속하는지 목 빼고 기다리시는 분이 그 정도는 되죠. 화상캠으로 강의를 하니까 회원들이 쏙쏙 머리에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바둑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 사람들에겐 백마가 엄청 희소식이었지요. 지금도 접속하긴 하지만 그저 바둑정보를 얻고 유저들과 안부를 접하기 위해서이지 전처럼 강의나 지도대국은 엄두를 못냅니다. 몹시 아쉬워요.

67세에 타이젬 9단이면 꽤 드문 케이스인데, 과거 얘기 좀 해주세요
저는 부산에서 나서 부산에서만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항만에서 운송하역 무역대행을 했습니다. 바둑은 14살 때 처음 돌을 잡았고 30세 언저리에 강1급이 되었죠. 그 당시엔 바둑 두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때입니다. 뭐, 대회 같은 것은 한 번도 안 나갔지만요.

▲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백마부대의 부대기(사진출처=네이버이미지)

동호회이름은 왜 백마사랑이죠? 백마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요?
제가 백마부대출신입니다. 백마고지전투는 세계전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죠. 바로 백마부대는 1966년 맹호부대에 이어 파월부대로 작전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나요? 어쩐지 인상이 강해 보입니다.
원래 특수부대에서 군무했는데 사격을 잘했어요. 논산훈련소를 나올 때 18발 사격에서 모두 명중하여 스나이퍼로 부대원들에게 인기가 드높았죠. 당시 부대장이 가고 싶은 부대를 말하라고 했는데, 어떤 부대가 좋은 부대인지 몰라서… 충북 증평에 있는 37사 전투부대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곧 부대가 없어지면서 다른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곳이 백마부대였습니다. 베트남전에는 문서전령 작전정보 등을 맡았어요. 당시 전투수당 57달러를 받았죠.

바둑을 잘 두면 군대에서는 대접받는다고 하던데, 군대에서 바둑 둔 얘기는 없나요?
그때도 1급은 되었으니 바둑사역하러 사단장에게 많이 불려갔지요. 그런데 바둑 잘 두면 편하다는 말은 맞지 않아요. 고참들에게 호강 받다 왔다고 오히려 구박당하고 기합만 받았죠. 하하.

용맹한 백마부대 얘기와 ID '쓸쓸한강변'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백마는 오래된 바둑모임이었는데 타이젬이 생기면서 타이젬이 시설 면에서 탁월하니 타이젬에 정착하자고 얘기가 모아졌습니다. 그래도 당시 회원들을 100% 모두 다 데리고 오지는 못한 것이 상당히 아쉬웠지요. 그 즈음 겨울철에 수영천변에 서 있었는데 왠지 좀 쓸쓸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ID가 쓸쓸한강변이 되었어요. 별 것 없어요.

다시 동호회 얘기로 돌아와서, 50대면 한참 돈 벌어야 할 시기인데 왜 그 시간에 무료노력봉사를 했는지요?
가끔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있잖습니까. 하하. 제 아내도 돈도 안 생기는 것을 왜 하느냐고 구박을 많이 했지요. 그러다가 최근까지 제 아내도 동호회 모임에도 가끔 나갑디다. 무엇보다 제가 백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굳이 돈 욕심이었다면 다른 일을 해야지 그 짓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백마는 오래 못 갔을 겁니다.

사욕을 위해서 동호회를 만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진정한 동호회를 만들려면 어떤 게 가장 우선되어야 할까요?
정이 있어야지요. 대가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물론 회원들이 고생하시는 사범이나 회원들을 위해 찬조금이나 회비를 더러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 그의 사상과 철학이 좋아서 만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마는 화합으로 만들어진 동호회죠. 애들 연애하듯이 불같이 일어나긴 쉬워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힘이 듭니다. 또 회원 1~2명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오프든 온라인이든 사람 모이는 것은 똑 같은 이치입니다.

▲ 부산에서 백마기원을 운영하고 있는 대장백마 쓸쓸한강변(오른쪽)이 역시 백마회원인 백마대공(중앙)의 바둑을 관전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성들에게 백마 타고 온 왕자님은 우상이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공주'에게 찾아오는 왕자님은 모두 흰 말을 타고 왔기에 은연중에 백마 탄 왕자는 부와 명예와 함께 복 있고 용기 있는 남자를 상징한다. 백마를 탄 왕자님이란 비단 공주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부족분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캐릭터다. 백마사랑동호회 회원들에겐 '쓸쓸한강변'님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닐까.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영화가 있었다. 처음 백마를 생각했을 때 바로 그 은마가 떠올랐다. 그래서 패러디하여 제목을 달아보기로 했다. '백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로. 은마는 오지 않을지 몰라도 백마는 꼭 돌아올 것이다.

인터뷰 내내 아쉬움을 간직했던 쓸쓸한강변님. 인터뷰 막바지에 약간의 적막이 흐르자 그 적막을 깨는 소리가 더 없이 반갑다. "이젠 다시 타이젬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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