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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28 00:47:46
  • 수정 2021-09-28 1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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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黎明의 劍에 우승자 송민혁(20).


이번 黎明의 劍에서는 내로라하는 고수들 중 유독 ‘무관의 강자’ 송민혁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거기서 거기인 듯 한 주니어바둑에서 누가 우승할 지 맞혀보라는 건 부질없는 짓에 속한다. 그러나 바둑기자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가끔은 촉(觸)이 설 때가 있다.


난데없이 푹 눌러쓴 모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송민혁을 가끔 보아왔던 기자는 그가 모자를 눌러쓰고 시선을 아래에 둔 모습을 여태 본 적이 없다. 최소한 대국장에 모자를 쓴 채 나타난 적은 없었다. 뭔가 가리고 싶어 하는 느낌, 주변 시선을 피하고 싶고 반상에만 오직 집중하고픈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송민혁이 얼추 2년간 아마대회에서 보여주었던 깔끔하게 예의바르고 순한 이미지와는 분명 달랐다. 독해졌다고나 할까. 아니, 독해지려고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예선 본선 이틀 동안 가장 먼저 대국장에 당도한 선수가 송민혁이다.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빨리 당도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평소와 다른 사고방식이었고 생활패턴 자체의 변화가 있음을 의미했다. 


그랬다. 우승 직후 몇 마디를 나눠보고서야 이러한 송민혁의 자잘한 변화가 실제 그에게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변화가 2020년 연구생 랭킹1위로 알아주는 바둑엘리트였던 송민혁을 첫 우승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임을 알았다.


▲결승전 모습 조성호-송민혁.



첫 우승인데 소감은?
사실 한 판 한 판 두는 게 즐거워서 대회에 나온다. 우승은 기쁜 것이지만 너무 기뻐하지 않으려고 한다(웃음). 항상 잘하고 나면 금방 느슨해지는 걸 알았다.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긴 과정에서 하나의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우승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가?
이틀간 7연승을 했다. 아까 말했던 한 판 한 판 즐기는 타입인데, 이번엔 4강에서 김다빈과 두었을 때 형세가 조금 좋게 되었고, 그때 우승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왔다. 매 경기가 순리대로 풀리진 않았는데, 의외로 우승까지 갈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학창시절엔 우승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성인이 되어 우승을 해보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라면?
그간 바둑을 대하는 태도가 좀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치열함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너무 치열하기만 해도 안 되고 즐기는 맘도 있어야 하니까… 어렵다(웃음).


한 때 연구생 1위였고 입단이 유력했던 유망주였는데, 지난 2년간 아마대회 성적표가 별로였던 것 같다. 혹시 안일함이 있었던 건 아닐까?
쉽게 입단이 될 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거푸 입단대회에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많이 쳐졌다. 나름 충분히 열심히 하려고 했고, 최근엔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바둑 자체를 정중하게 대하질 못했다. (정중하지 못했다는 건?) 너무 이기려고만 두었다는 반성이다.


이번 黎明의 劍에서 기자는 송민혁이 우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웃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각오가 대단했었는데?
지난번 입단대회 낙방한 후 분위기 전환차원에서 삭발을 했는데 아직 머리가 길지 않아서 모자를 썼다. 입단대회 떨어지고 나니까 많이 내가 방황하는 것 같았고 주변에 시선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고, 좀 발전적으로 생각을 하고 싶었다.


어떤 결론을 얻었나?
독해져야 한다. 결정적인 마무리에서 물러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결론은 독하지 않아서 마무리가 안 되었던 것이다.


김다빈 조성호 김사우 등 01년생이 친구들이 이번 黎明의 劍에서 모두 4강에 들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입단대회 이후 새로운 기존 강자들이 빠져나간 다음이니 일시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도 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성적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아마바둑계에서 10년 위 선배들이 성적을 내는 걸 보면서 느낀 생각은?
선배들이 확실히 집중력이 좋다고 느꼈다. 호흡이 기니까 천천히 기다릴 줄 알고…, 반면 우리들은 빨리 승부를 보고 싶어 하니까 급해지는 것 같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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