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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5-29 13:30:45
  • 수정 2019-05-29 13: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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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오늘도 바둑을 둔다.' 인천 미추홀리그 제46회 대회 전경.

 

일인자를 가리는 대회는 영웅은 즐거우나 비영웅은 서글프다. 축제는 즐김을 모토로 하기에 승부하는 쫄깃함은 덜할 수밖에 없다.

 

승부를 진지하게 즐기되 영웅의 몫을 줄이면 다수가 즐거움을 공유하게 된다. 바로 여기 미추홀리그는 대회와 축제의 장점을 하나로 합쳐놓았다.

 

지난 26일 작지만 소중한 행복 소확행(小確幸) 미추홀리그를 찾았다. 바로 인천 모래내 시장 인근 김종화 치과. 정확히 치과 옆 '인천바둑발전연구회'라는 거창한 간판이 걸려있다. 한 100평 쯤 되어서 월세를 준다면 200만원은 족히 나갈 법한 곳인데, 인천바둑의 대부 김종화 원장은 스스럼없이 바둑공간으로 쓴단다.

 

오늘이 장날이다. 언제나 일찍 나와서 객을 맞아주는 현명덕 한국장애인바둑협회장과 그 식구들이 원활한 대회진행을 맡아 수고할 테다. 저쪽에는 후덕한 김원장 부부가 출전자들을 반가이 맞는다. 김원장의 부인 곽계순 씨는 학창시절 독학으로 바둑을 배워서 강1급에 이른 입지전적인 분이다. 오늘은 부부도 모자라 막내아들까지 대회를 위해 나섰다고.

 

▲ 쌍두마차가 될 미추홀기우회 전현직 회장님들. 김종화 전 회장과 최병덕 신임회장.

 

미추홀리그에서 우승하기는 쉽다. 우승이 1명이 아니라 2~3명 되기 때문. 즉, 스위스리그로 4승을 거두면 우승이니까, 딱 4판만 열심히 두다보면 우승은 찾아온다. 절대평가인 셈. 준우승도 3~4명 된다. 1패자 중에서 나온다. 또 반타작 2승2패 10여명에게도 박수받을 기회와 사진찍힐 기회가 주어진다.

 

기자도 이 미추홀리그에 가끔 출전한다. 취재목적도 았지만 출전이 우선이다. 30년 동안 동네1급을 두고는 있지만 그럴싸한 바둑대회엔 출전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미추홀리그가 딱 제격. 혹시 아는가. 황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을 지.

 

▲ 전주에서 올라온 아마바둑계 대부 양완규(80).

 

실제로 인천 부천 수원 서울 심지어 부산 전주에서도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황소가 등장한다. 압구정리그 총무 장혁구 이석희는 서울에서 왔다. 부천에서 임흥기 등 여러분이 보이고, 6단은 됨직한 솜털 보송보송한 중딩은 인천연구생이다. 연구생 8조 초딩도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나타난다.

 

반가운 프로들도 입장한다. 인천의 간판 서능욱과 인천사람 다 된 나종훈, 바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정대상. 그리고 오랜만에 인천의 왕고참 유병호도 바둑과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이게 누군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선다. 최근 박정환 이세돌을 거푸 꺾고 GS칼텍스배 4강까지 진격한 요즘 최고스타 이호승이다. “인천 분들이 그간 응원 많이 해주셔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미추홀이 막강해서 우승하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 GS칼텍스배에서 박정환 이세돌을 꺾고 선전했던 이호승 프로가 인천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어머니 윤상희 씨와 함께 리그를 찾았다.

 

“압구정리그 못지않지요?” 김종화 원장은 미추홀리그의 수준을 은근히 자랑한다.

 

프로들 뺨치는 아마강자가 많이 눈에 띈다. 인천 박중훈의 권유로 홍근영과 심의현 그리고 과거 연구생 강자였던 박지웅도 출전했다. 해외 대회를 섭렵하고 다니는 ‘풍운아’ 김도협도 인천연구생 출신이라 꼬박 출석. 김도협은 해외에서 한 스무번쯤 준우승을 했을 게다. 더했을 수도 있다.

 

또 서부길 김동섭 등 전국구 강자들도 호시탐탐하고 있다.

 

‘오!’ 자동으로 자리를 벌떡 일어서게 된 건 팔순의 양완규 대선배가 보였기 때문. “이가 신통치 않아서 치료를 받으러 겸사겸사 김종화 치과에 날을 맞춰 들렀지.”

 

참고로 바둑인 중 치과치료가 필요한 분은 대구에는 덕영치과병원, 인천에는 김종화치과를 강권한다. 그들 원장님은 뼈속 바둑인인고로, 바둑 한판으로 치료비를 대체할 수도 있을 듯~.

 

▲ 최병덕 회장은 즉석에서 미추홀리그 우승상금을 2배로 올리겠다고 공약.

 

제46회 대회는 살짝 특별했다. 최병덕 미추홀기우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고 이호승 프로의 선전을 치하하는 그런 자리였다. 신임 최회장이 이번 대회부터 우승상금은 20만원으로 즉석에서 인상한다고 공약하자 박수갈채가 쏱아졌다.

 

누구나 노력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서 리그전은 시작되었다. 스위스리그는 1라운드에서 이기면 우승을 꿈꿀 수 있고 1라운드에서 지면 잘해야 준우승이다. 다들 이길 사람이 이겼다. 프로들은 물론이며 아마강자들도 다들 이겼다. 어린 양들은 고수들에게 한수 배우면서 기꺼이 승점을 헌납했다.

 

미추홀 치수는 이렇다. 프로와 주니어강자들을 0에 두고서 차례로 1,2,3으로 기력분포표 만들었다. 이미 46회나 이어진 대회인지라 매우 공정하다. 최대치 3점 바둑(혹은 4점)으로 치러지게 된다. 0과 1이 두면 정선이라는 얘기.

 

▲ '인천 간판타자의 대결.' 프로 서능욱-아마 서부길(승).

 

2,3라운드 접어들자 명국이 많이 쏟아진다. 프로가 패해야 사람들이 몰린다. 우승후보 이호승은 아마강자 홍근영에게 좋았던 바둑을 놓치며 최대 이변을 만들어준다. '천변만화' 정대상도 연구생출신 심의현에게 패하며 우승대열에서 탈락. 인천의 간판타자 대결에서 아마 서부길이 프로 서능욱을 2집 차이로 이겼다. 외 나종훈 유병호 프로도 모두 패했다. 오늘 미추홀리그는 아마가 프로에게 완승을 거둔 날이었다.

 

미추홀리그는 모두가 시상하고 모두가 수상하는 인간미 넘치는 리그. 흔히 보던 상금액수보다 '0'이 하나는 빠져있지만 그 상금을 받아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파안대소가 카메라에 잡힌다.

 

▲ 이호승(승)-박지웅.

 

“미추홀리그는 80대부터 12살 어린 연구생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인 우리나라 최고의 동네리그전입니다. 이런 기우회가 또 있을까요?”

 

해가 뉘엿뉘엿해질 즈음, 김종화 원장은 간단한 시상식을 마치고 주문한 도시락을 풀어놓고선 저녁 한 끼를 소박하게 대접한다. 하루 4판 가지고 양이 안 차는 사람들은 김원장과 삼삼오오 음주바둑을 위해 시장통으로 사라져갔다.

 

‘다음에 또 가야지…’ ‘나도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는 분은 달력에 6월 셋째 일요일에 동그라미를 쳐두시라.

 

▲ 미추홀리그의 산파역 김종화 원장과 곽계순 바둑부부.

 

 

▲ 김종화치과의원 옆에 바로 그보다 훨씬 넓은 인천바둑발전연구회 공간이 있다. 물론 늘 바둑인에게 개방된다.

 

▲ 대회장에 들어서니 한국장얘인바둑협회 현명덕 회장이 생활체육TV와 바둑의 효용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 대회 진행석 모습 상금을 일일이 봉투에 담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다. 왼쪽은 김종화 원장의 막내아들 희태(17)군이 진행을 맡았다.

 

▲ 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처음 리그에 방문한 선수들이 일어나서 자기 소개를 한다.

 

▲ 최병덕 미추홀기우회장-나종훈 프로.

 

▲ 연구생 조은호와 50대 강1급 곽계순.

 

▲ 유병호 프로도 오랜만에 모습을 비췄다. 손녀딸 또래의 여자연구생과 경기 중.

 

▲ 장혁구-내셔널 강자 박중훈.

 

▲ 홍근영-이석희.

 

▲ 젊은 강자들의 복기 장면. 박중훈 박지웅 홍근영 심의현.

 

▲ 박지웅(3승1패).

 

▲ 심의현 4승으로 우승.

 

▲ 홍근영 4승으로 우승.

 

▲ 이호승(3승1패).

 

▲ 이호승(왼쪽)이 시상식을 기다리며 인천 팬들과 담소하고 있다.

 

▲ 2승2패자에게도 봉투가 주어진다.

 

▲ 환하게 웃는 이들은 행운상.

 

▲ 3승1패자들에 대한 시상. 최병덕 이호승 이석희 박지웅 박중훈 김종화(시상).

 

▲ 우승자 시상. 홍근영 심의현이 봉투를 자랑스럽게 들고 있다.

 

▲ 행운상 대상을 수상한 이재열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지고도 우승한 것과 같다고 한다.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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