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1-28 12:45:41
  • 수정 2019-01-29 07:28:02
기사수정

▲ 2019 활인검 한일친선교류전이 서울 아마바둑사랑회에서 지난 주말 질펀하게 치러졌다. 한일선수들이 함께 기념촬영.

 

아마바둑사랑회(이하 아바사)가 주최하는 대회 중 활인검(活人劍)이라고 있다. 살인검에 대가 되는 활인검. ‘사람을 살리는 검’이라는 뜻이며, 무협지에서 가끔 접하고 활극게임에서나 들을 수 있는 ‘활인검’은 대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면 바둑과는 관련이 있느냐? 있다. 바둑 고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제법 파격적인 요소들을 집어넣은 흥미진진한 비기(秘技)요, 이겨도 좋고 져도 좋고, 이긴 지도 모르고 져 있는지도 모르는, 꽤나 진지한 ‘퓨전대회’가 할인검이다.

 

활인검은 매년 설 1주일 전에 치러지는 행사입니다. 올해는 외국인선수들과 함께하는 해입니다. 취지를 이해하는 분들의 성원 바랍니다. (일본선수 16명 정도가 방한 예정).

 

공지가 나 붙었는데 참가금이 무려 15만원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출전할 분이 몇이나 있을까?’

 

결론은 차고 넘쳤다.

 

▲ 활인검은 개인전과 페어전 릴레이바둑 등 3개 라운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겨웠다.

 

이 활인검이 한해는 국내파들끼리 공중무예를 즐기고 또 한해는 한일교류전으로 치러진다. 올해는 2019 아바사 국제바둑교류전이란 이름으로 한일 양측에서 시니어바둑인 20여 명씩 출전하여 26일 서울 응암동 아바사회관에서 신명나고 질펀하게 치러졌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관습으로는 지하골방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적잖이 꺼려질 것임에, 하물며 일본손님까지 초대하는 이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여튼 대단한 아바사패밀리들이다.

 

클럽A7 홍시범 대표가 총괄 지휘하고 그의 아들 홍맑은샘 프로는 일본선수단 인솔부터 통역 대회 진행까지 도맡아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홍대표의 부인 처제 처남 그리고 A7 식구들이 물심노(物心勞)삼면에서 한국 바둑인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국위선양해주었다.

 

 ▲ 비록 교류전이지만 '1번다이'는 자존심 대결이다. 한국은 심우섭 박성균 간판타자가 등장했고(뒷줄) 일본은 코타로(프로)와 무라카미(아마7단)가 나섰다. 사진은 페어대결.

 

이번에 방한한 일본 팀은 매우 셌다. 일본을 떠올리면 '조금 약하다'는 뉘앙스를 완전 잊게 만들 선수구성이었다. 이제 막 프로가 된 후쿠오카 코타로(13)부터 국가대표급 아마7단이 6명이며 6단이 4명… 방한멤버가 전부 유단자급이었다.

 

일본팀은 자비로 한국바둑과 한국을 접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한국바둑 여행객을 모집한다는 일본아마교류협회 공지를 보고 전역에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몰려든 바둑마니아들이다. 그들도 공항에서 비로소 알게 된 사이들이라고.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대표로 꾸려졌다. 박성균 심우섭 이용만 최진복 김종민 양세모 곽웅구 강순찬 황원순 최계성 등 최고수급이 동참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다들 바둑계의 오피니언리더들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선수들은 기력 란에 한국 기력을 써 넣었다는 점이다. 즉, 일본7단은 한국6단이란 식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셌다. 아무리 교류전이라고 해도 바둑이 엇비슷해야 즐거운 법이니, 모처럼 한일 양국이 승부의 묘미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 3라운드 릴레이바둑대결에서 박성균이 착수를 하고 있다.

 

대회는 총 3개 라운드로 치러졌다. 3개 라운드마다 각각 승자에겐 10만원씩 상금이 주어진다. 단, 일본선수들은 전패를 해도 15만원씩 주어진다. 아마 여비에 보태라는 배려인 듯.

 

1라운드는 개인전으로 한일 양측에서 18명씩 출전하여 개인전 승부를 벌렸다. 한국이 일본을 11-7로 이겼다. 한국선수 11명은 10만원을 벌어놨다.

 

2라운드는 1라운드 상대들끼리 짝을 이뤄 페어대회를 치렀으니 국가 별 승패는 의미가 없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축구에서 전후반으로 나눠 진행하는 아바사 특유의 룰을 일본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일본 선수들은 전후반 사이의 하프타임 때 한국선수들에게도 다가가서 바둑 판세를 물어보는 등 이 신기한 룰을 만끽하는 광경을 연출했다. 김희중 조민수가 역시 인기만점이었다. 2라운드에서도 18명은 또 10만원을 확보했다.

 

3라운드는 한일 각 5명씩 10명씩 1개조가 되어서 한사람이 두 수씩 두는 릴레이바둑 두 판이 동시에 벌어졌다. 총 40명이 대형바둑판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하이라이트답게 초반에는 모두 알아서 자신의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다가 중반 이후 난전이 펼쳐지자 모두들 일어서서 관전하는 등 너무나 진지한 가운데 바둑의 묘미를 만끽했다. 뭐, 일본말 한국말 하나도 안통해도 다 고개로 끄덕끄덕 의사소통이 되었다. 역시 바둑은 수담이었다.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 저녁만찬은 호텔식 뷔페가 준비되어 있다. 촌음을 아껴서 바둑행사를 즐기기 위함이다.

 

만찬시간이 돌아오자 어느새 대국자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여들었다.

 

“충청도에서 리무진으로 배달된 막걸리입니다. 아바사식구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들입니다. 막사발 송명인께서 도자기 넉 점을 제공했습니다. 청산께서는 귀한 글씨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 20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계좌에 난데없이 1000만원이 찍혀있더군요. 천사는 확실히 있나 봅니다.”

 

분명 승자도 있었고 패자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즐겁지 않은 이가 없었다. 너끈히 승자를 격려하고 패자를 위로해주는 푸근한 맘을 갖고자 함이 바로 활인검(活人劍)의 속뜻임을 느낀 하루였다.

 

점심도 삼계탕으로 대접하더니만 저녁만찬도 일류호텔 뷔페 못지않게 직접 준비하는 이 지극 정성이란.

 

모두들 돌아가는 길에, 두둑한 상금 봉투와 혼자 들기 과분한 선물세트를 한아름 받아들었다. 구경한다고 수고한 기자도 20여 만원상당의 선물꾸러미를 확보했으니 횡재가 따로 없었다. 이제야 15만원 참가금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과거에 일본바둑이 한국을 많이 도와주었잖습니까. 지금 일본이 조금 위축되었지만 그들이 일어나야 바둑계가 골고루 발전하겠지요. 혹시 올챙이시절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라도 해야 한다고 맘이 들더라고요.” (A7 홍시범 대표)

 

사진으로 대회 분위기를 전한다.

 

 

정광일-쿠보코토하. 쿠보는 회사원이며 바둑강사인데, 부친이 관서기원 쿠보아츠이키 프로.

 

▲ 마츠다아스카+김대환. 부부사이로 오해했다는^^.

 

▲ 인천에서 지하철 버스 택시 등 4번을 갈아타고 2시간여가 걸려 참여했다는 열혈바둑광 인천바둑협회 곽계순 부회장이 수읽기에 골몰하고 있다.

 

▲ 10년전 경제인바둑대회 때 대회진행을 하는 것을 보고 홍시범 대표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이쿠다요시오(76)와 괴산명필 청산 정순오 선생.

 

▲ 한국대표 최진복이 후카와코우지(64)와 짝을 이뤘다.

 

▲ 점심은 아바사 삼계탕권으로 전원 지불했다. 응암동 대림시장 일대에서만 통용됨.^^

 

▲ We Are The Champions, 아리랑 등 귀에 익숙한 음악을 들려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이석원의 바이올린 연주. 점심식사후 패자 위문공연이었다.

 

▲ 후쿠오카 코타로(13)와 홍시범 대표와 홍맑은샘 프로. 코타로는 홍맑은샘의 제자로 한국도장에서 장기간 유학을 오기도 했다. 올 4월이면 어엿한 일본의 프로가 된다고.

 

▲ 키타가와+강순찬과 노구치+곽웅구 페어대결.

 

▲ 하세가와 카나미(73)와 홍맑은샘 프로. 하세가와는 60세에 바둑에 입문하여 전 세계에 바둑친구가 많다. 남편의 사업상 10년이상 부임했던 한국에도 지인이 많다고.


▲ '글로벌여사' 김향희+키타가와마미 페어. 전반을 마치고 하프타임 때 작전을 숙의하고 있다.

 

▲ 흑이 작전회의를 할 때 백을 든 쪽은 난로가에 둘러앉아 10분간 환담.

 

▲ 작전회의 중 바쁜 사람은 따로 있다. 강타자 조민수가 인기만점이다.

 

▲ 그런데 상대팀에서도 조민수를 작전회의에 참석시키니... '이거 뭐여? 방금 갈쳐줬는디?'

 

▲ 3라운드 릴레이바둑. 꽤 진지하게 진행되었고 몰입도 최강이었다.

 

▲ 모든 바둑행사가 끝이 나고 만찬 준비 중에 또 막간음악회. 중앙대 국악과 대학원과정의 대금연주자 박열기의 대금산조 공연. 이선희의 '인연'을 퉁소로 연주한 대목이 특히 맘에 들었음.

 

▲ 수준있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수준을 급강하. 즉석복권긁기 코너엔 예의고 자시고 없었다. 일본과 한국이 따로 없다.

 

▲ 카메라 찍든 말든. '당첨만 되라 이 생활 끝이야!'.

 

▲ 김희중 사범이 하세가와에게 송재석 도자기명인이 제작한 막사발을 선물로 주고 있다. 하세가와는 "이런 좋은 이벤트에 참가해서 너무 기쁘고 대회장 구석구석마다 너무 바둑을 사랑하는 흔적이 즐비해서 계속 머물고 싶을 정도로 너무 감사했습니다."고 활인검에 참여한 소감을 말했다. 

 

▲ 후쿠오카 코타로(13)는 또렷한 한국말로 “세계최강이 되겠습니다.”고 큰소리로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 3승을 거둔 무라카미가 (코타로의 인사말에 고무된 듯) “인류최강이 되고 싶다. 그보다 먼저 코타로와 라이벌이 될 것 같다.”고 말해 좌중 폭소연발. 오른쪽의 무라카미(35) 일본단장에게 청산 선생이 '마음을 비우고 돌을 담아라'는 글귀를 설명하고 있다. 허심포석(위천 이동원 작).

 

▲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4일전에 몸이 아파서 한국을 못 온 일본 친구를 위해 특별상 '잊혀 지지 않는 친구상'을 수여하기도.

 

▲ 일본선수단에게서 인기가 급상승한 제주 강순찬 사범이 '부득탐승' 글귀를 선물받고 있다. 일본친구들에게 '제주에 오시면 날 찾으라'고 말한 것이 인기상승의 비결인 듯. 홍시범 강순찬 청산 홍맑은샘.

 

※ 이 기사는 현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badukilbo.com/news/view.php?idx=116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